봄날은 간다..
먼저 직장 사보에 마지막으로 기고했던 글..
영원한 사랑은 없지만 그래도 사랑은 영원하다...
- ‘봄날은 간다’를 보고...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이제 막 시작된 사랑을 뒤로 한 채 죽음을 맞는 정원과 그 죽음을 모른 채 사진관에 걸린 자신의
사진 속에 담긴 그의 사랑을 확인하며 돌아서는 다림의 행복한 웃음이 안타까웠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그로부터 3년 만에 감독은 또 하나의 영화를 우리들 앞에 내밀었다.
‘봄날은 간다’.
녹음실에서 일하는 상우는 지방 방송국 아나운서 겸 PD인 은수와 함께 그녀의 프로그램을 위한 소리채집
여행을 떠난다. 바람 부는 대나무 숲에서 잎들이 부딪혀 사각거리는 소리, 눈 녹은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
고즈넉한 새벽녘 산사의 풍경소리... 그 위로 소복이 쌓이는 눈처럼 두 사람의 감정도 쌓여간다. 그렇게
그들에게 봄날이 찾아온다.
하지만, 계절이 변해가면서 그들의 사랑에도 변화가 생기고 만다.
이혼의 상처를 갖고 있는 은수는 결혼까지 생각하며 다가서는 상우가 부담스러워 점점 멀어져 간다.
상우는 그렇게 멀어져 가는 그녀가 안타까워 괴로워한다. 결국 헤어지자고 말하는 은수에게 상우는
묻는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 사랑이란 것도 어떤 다른 무엇에서 변해왔을 터이니 다시 다른 모습으로 변해
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그래... 이 세상 모든 것처럼 사랑도 변한다. 그렇게 묻던 상우도 벚꽃이
화사하게 핀 새로운 봄날에 다시 찾아온 은수를 밀어내지 않는가? 공기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소리는
녹음기에 담아둘 수라도 있지만, 변해 가는 사랑은 그저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절규해
봐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변해 가는 사랑을 지켜보며 마음 아파하는 것은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의 정원과 같은 행운(?)을
누리지 못하는 대부분의 우리들이 겪어야만 하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렇게 도저히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사랑도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 상처와 함께 차츰 추억이란 이름으로 희미해져 갈
것이기에 우리들은 또 오늘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완전히 잊지는 못하겠지. 상우가 가르쳐
준대로 베인 손을 무심코 머리 위로 흔드는 은수처럼, 은수가 흥얼거리던 ‘사랑의 기쁨’의 멜로디를
다시 들어보는 상우처럼...
사랑도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조금은 잔인하게 확인하게 되지만 영화는 그렇게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홀로 다시 소리채집에 나선 상우의 입가에 번지는 엷은 미소는 아무리 사랑의 상처가 깊더라도 그 상처는
약간의 흉터만을 남긴 채 아물어 갈 것이니 그 상처가 다음에 찾아올 사랑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그 사랑을 준비해야만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영원한 사랑은 없지만 그래도 사랑은 영원하기에... 봄날은 가지만, 또 다른 봄날이 찾아오는 것처럼...
터미널에서 처음 만났을 때 은수가 무심코 했던 말처럼 그저 서로에게 조금씩 늦었을 뿐이었다고 아름답게
추억하면서...
그런데 말이다.
영화가 끝난 후 가슴저린 눈물을 흘렸던 것은 옛 사랑의 추억이 떠올라서가 아니라 또 다시 그렇게
추억으로 지워버려야만 하는, 그럴 수밖에 없는 아픔이 있을 것만 같은 슬픔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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