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Days After Life..
나로 인해 더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 영화 ‘원더풀 라이프 (7 Days After Life)’를 보고 -
매주 월요일, 이승과 저승의 중간에 위치한 ‘림보’에 새로운 사람들이 도착하면 면접관들은
죽은 이들에게 사는 동안 가장 행복했던 순간 하나만을 고르게 한다. 그러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 순간을 영화로 만들고, 사람들은 그 영화를 보면서 다른 모든 기억은 지워버리고
오직 그 순간만을 기억 속에 간직한 채 영원의 시간 속으로 떠나간다.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사람들의 대답은 정말 각양각색이다. 관동대지진 때 대나무 숲에서 그네를
타며 먹던 주먹밥의 맛, 조종사가 되어 처음 하늘을 날았을 때 빛나던 구름의 모습, 등교 길
후덥지근한 전차 안으로 불어 들어오던 시원한 바람의 느낌, 자신의 귀를 후벼주던 어머니의
정겨운 무릎의 감촉...
면접관들과 사람들의 인터뷰가 다큐멘터리 화면처럼 진행되는 전반부는 약간 지루하게 눈꺼풀을
아래로 잡아당기기도 하지만(친구와 저녁을 먹으면서 곁들인 와인 기운 땜에 더더욱... ^^;),
내내 스스로에게 난 언제 가장 행복했더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고, 떠오르는 소중한 기억들이
입가에 웃음을 짓게 만들기도 한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추억을 선택하고 영화로 만들어 가면서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기억들이
그 구체성을 잃어 가는 모습이었다. 명확하지도 않고 실제보다 아름답게 가공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추억’이란 놈이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기에...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 이야기는 면접관 중 한 명인 모치즈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그를
포함해 림보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한 순간을 선택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모치즈키는 20대의 한창 나이에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했는데, 그는 전쟁터로
나가기 전에 교코라는 여자와 약혼까지 했었다.
그에게 와타나베라는 사내가 배정된다. 70년의 삶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와타나베는 자신의
인생이 모두 고만고만했을 뿐이라며 행복한 추억을 선택하지 못한다. 그를 도와주기 위해 그의
일생이 담긴 비디오를 보여주던 모치즈키는 몇 년 전에 죽은 와타나베의 아내가 바로 자신의
약혼녀 교코였음을 알게 된다. 모치즈키는 자신에게 유일한 사랑이었던 그녀가 자신이 전사한지
얼마 안돼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와타나베 역시 대화 중에
어렴풋이 모치즈키가 자기 아내의 약혼자였다는 사실을 알아채게 된다.
결국 와타나베는 아내가 죽기 얼마 전 한 공원에서 함께 했던 순간을 선택하여 떠나간다.
모치즈키에게 남긴 편지에서 그는 아내 교코가 자기와 결혼하기 전에 죽은 약혼자 얘기를 했으며
매년 기일에 몰래 그 사람의 무덤을 찾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그래서 아내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당신을 질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아내와의 순간을 영원한 기억으로 선택한
것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세월을 함께 했었기 때문이라고...
남겨진 모치즈키... 자신을 짝사랑하는 다른 면접관 시오리의 도움으로 필름창고에 쌓여있던 교코의
필름을 찾아낸다. 그녀가 선택했던 영원한 기억은... 다름 아닌 자신이 전선으로 떠나기 전 함께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순간이었다. 그녀는 오십 평생을 함께 한 남편과의 추억 대신 죽은 약혼자와의
추억을 영원한 기억으로 선택했던 것이다.
이제 그녀와의 추억을 선택해 영원 속으로 떠나갈 거냐며, 자신은 그와 함께 한 림보에서의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결코 추억을 선택하지 않을 거라며 울먹이는 시오리에게 모치즈키는 말한다.
“이제야 깨달았어. 내가 누군가의 행복의 일부분이었다는 것을...”
결국 그가 선택한 기억은 교코에 대한 것이 아니라, 시오리를 포함한 림보에서 함께 일한 다른
면접관들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일생에서 ‘자신이’ 행복했던 순간은 끝내 선택하지 못했던
모치즈키는 자신이 다른 누군가의 행복의 일부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걸 가능하게
해주었던 림보에서의 추억을 영원한 기억으로 선택한 것이다.
‘개인’으로서의 우리네 인간들은 얼마나 쓸쓸한 존재인지... 늘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결국 우리들은 늘 혼자일 뿐이라는 것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연인간에도,
부부간에도 기억 속에서 엇갈릴 수 있는 것을...
영화는 그렇게 소박하지만 놀라운 진실을 관객들에게 일깨워 준다.
영화는 끝이 났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
나는 단 한사람만이라도 누군가의 행복의 일부분일 수 있을까? 늘 곁에 있어줄 수는 없지만 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는 그런 사람이 있을까? 그럴 수 있기를 다시 한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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