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 ‘미용사의 남편(The Hairdresser's Husband)’을 보고...
미장원에서 머리를 감겨줄 때면 기분 좋은 졸음이 솔솔 몰려오는 듯한 편안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씩 이 다음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머리를 감겨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그런 느낌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미용사의 남편이 되고 싶어한 소년이 등장하는 영화 한편이 있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원어의 느낌을 살린다는 핑계로 발음만 한글로 옮긴 무성의한 제목들이 난무하는 요즘과는 달리
원제보다도 훨씬 멋진 제목을 단 이 영화를 처음 만났던 것이 대학 신입생이었던 1991년. 그때
극장에서 혼자 몇 번을 보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제 10년 만에 다시 이 영화를 보면서 내 자신은
그때로부터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떨칠 길이 없다.
적어도 ‘사랑’에 대해서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했던 사춘기 시절, 동네 미용사를 동경하던 앙트완느는 반드시 미용사의
남편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어느새 중년이 되어버린 그는 미용사 마틸드를 처음 만난 날 청혼하고
다음 만남에서 그녀도 그 청혼을 받아들인다.
가족도, 기억하고 싶은 옛 시절의 추억도 없는 마틸드는 단 하나만 약속해 달라고 부탁한다.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었을 때, 절대로 사랑하는 척하지 말아 달라고... 그렇게 시작한 결혼생활
10년 동안 그들은 다투는 일 한번 없이 서로를 사랑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이 세상에 둘만으로
충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그에게 화를 낸 그녀는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낀다. 여전히 서로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그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고 그녀는 술을
마시고 싶어한다. 흐르는 세월을 얼굴에 새겨 가는 단골손님들, 너무나 사랑해서 결혼했겠지만
이제는 변해버린 부부들, 우연히 발견한 천장의 균열...
이 세상 그 무엇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일깨워 주는 모든 것들이 그녀의
불안을 키워가던 어느 날, 마틸드는 앙트완느와 마지막 사랑을 나눈다. 그의 모든 것을 기억 속에
가져가려는 듯... 그리고는 거센 물살 속에 몸을 던져 버린다.
‘당신이 나를 잊지 못하도록, 우리의 사랑이 영원할 수 있도록 지금 떠납니다...’
마틸드는 영원할 것만 같은 이 사랑도 끝내 변해버리고 말 거라는 불안을 이겨내지 못했고,
앙트완느는 그런 그녀의 불안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한 그녀의 결정이
당황스럽고 안타깝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것 또한 나의 솔직한 심정이기도 하다.
사랑의 결실이라는 결혼이 유난히 많은 계절, 가을... 그래서 넘쳐나는 행복과 축복 속에서 사랑의
의미를 그 어느 계절보다 자주 생각해 보게 되는 이때가 되면 자주 이 영화가 떠오르곤 한다. 단순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화면 하나하나가 놓치기 아깝도록 아름다우면서
애잔한 영화이다.
영화 속엔 앙트완느가 아랍풍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이 가끔 등장하는데, 그 모습은 우스꽝스럽지만
보는 이에게 주는 느낌까지 그렇지만은 않다. 특히 그녀가 떠나버린 후 추는 춤은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몸짓인 듯 처절하기까지 하다. 춤을 멈춘 그는 잠자코 창 밖을 내다보면서 말한다. 곧 미용사가
돌아올 거라고...
만일 누군가를 사랑해서 마음이 아프다면... 그래서 가슴이 찢어진다면... 그건, ‘사랑’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랑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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