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들린다..
역시 난 너를 좋아해... 그렇게 느끼고 있었어...
- ‘바다가 들린다(海がきこえる)’를 보고...
그저 바다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밤길을 달려 도착했다. 굽이굽이 산길을 힘겹게 내려오면
마주치는 밤바다... 도심에서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별들이 촘촘히 박힌 밤하늘이 커튼처럼
드리워져 맞닿아 있는 수평선, 그 위로 별빛이 비치듯 점점이 떠있는 오징어잡이 배들의 집어등
불빛... 오랜 밤길 운전의 피로를 씻어주는 이 아름다운 풍경이 내가 늘 밤바다를 찾는 이유
이기도 하다.
어슴프레 밝아오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두발을 바닷물에 담그고는 가만히 눈을 감아 본다.
파도 소리, 갈매기 소리, 뱃고동 소리... 바다가 들려온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웃의 토토로’ 등 최근 몇몇 작품이 국내에서 극장개봉 되기도 한
일본의 지부리 스튜디오의 1993년 TV용 애니메이션, ‘바다가 들린다(海がきこえる)’. 요즘도
가끔 마음이 지칠 때면 손이 가곤 하는 이 작품을 처음 대했을 때,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캐릭터
산업이라는 부가가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애니메이션 장르의 특성을 철저히 무시해 버린
평범한 인물들과 스토리.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앤딩 크레딧을 바라보는 이의 마음속에 더 큰 파문을
일으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학생 시절, 수학여행을 둘러싼 학교측과의 갈등을 계기로 친구가 된 모리사키와 마츠노.
고교 2학년 여름, 그들 앞에 부모의 이혼으로 도쿄에서 전학 온 리카코가 나타난다. 그녀에게
한눈에 반해 버린 마츠노와 그것을 알기에 그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하지만 이래저래 자꾸만
얽혀드는 모리사키, 그리고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리카코. 이 세 사람을
둘러싼 평범한, 너무나도 익숙한 일상이 펼쳐진다. 그 속에서 조금씩 싹을 틔우던 리카코와 모리사키의
사랑과 마츠노와 모리사키의 오랜 우정 모두 오해로 말미암아 끝나버리지만 대학생이 되어 다시
찾은 고향마을에서 오해는 모두 풀리게 된다.
동창회에서 리카코를 그렇게도 싫어했던 시미즈가 그녀를 보고 싶다며 이야기한다.
“뭐랄까, 짝궁 바꾸는 것과 같은 거야. 초등학교 때는 말이야, 싫어하는 아이가 짝궁이 되어 버리면
절망해서 학교도 안 가게 되고 그렇지 않았어? 내가 사는 세계가 좁아서 싫어하는 아이가 옆에 있게
되면 치를 떨었었지. 하지만 학교 이외의 세계가 생기게 되니까 싫어하는 아이 한 둘 쯤은 상관없게
되는 거야.”
서로 너무 틀려서, 서로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그럴 수가 없었던 그런 시간들이 끝나고 이제는
조금 더 큰 세계에서 다시 서로를 마주하게 된 모리사키와 리카코, 그리고 친구들.
도쿄의 지하철역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 그 동안의 일을 사과하듯 정중하게 인사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모리사키는 생각한다.
‘역시 난 널 좋아해... 그렇게 느끼고 있었어...’
사랑이니 우정이니 하는 말은 한마디도 안 하지만 그 참모습이 무엇인지를 들려주는 아름답고 소중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파도에 밀려온 모래가 발목을 덮는다. 바다가 들린다는 건 파도 소리, 갈매기 소리, 뱃고동 소리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갖고 바다를
찾는다. 전하고 싶은 상대방에게는 차마 전하지 못한 많은 사연들을 털어놓고 갈텐데, 저 바다라는
녀석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알고 있을까? 그 상대방이 우연히 찾아온다면 또 얼마나 그 사연을
전해주고 싶을까? 대학생이 되어 다시 만난 모리사키와 마츠노도 1시간 여를 바다를 바라보면서
바다가 들려주는 누군가의 진심을 들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바다야, 나한테 들려줄 이야기는 없니? 그럼... 내 이야기를 들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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