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ttle Field Earth..
내가 여름이 싫은 이유
- 영화 ‘배틀필드(원제 : Battle Field Earth)’를 보고...
예로부터 사계절이 뚜렷해 아름다웠던 우리나라가 ‘지구온난화’라는 세계적 추세에
동참하기 시작하면서, 계절이라고는 여름과 겨울밖에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같이
푸짐하고 여유로운 사람은 더위를 잘타고 땀이 많기 때문에 여름을 특히 싫어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더더욱 여름이 싫은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여름방학시즌을 맞아
시원한 극장을 찾아 몰려드는 관객들을 노리고 철저히 계산되어 만들어진, 뻔할대로
뻔한 이른바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무슨 이벤트처럼 온통 극장가를 뒤덮기 때문이죠.
한마디로 저같은 사람은 볼 영화가 없습니다.
그래도 아주 가끔씩 비디오출시를 목표로 며칠간만이라도 개봉하는 숨은 보석같은
영화들이 있기 때문에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 미루어 보았지만 결국 원고
마감시간은 다가오고... 어쩔 수 없이 전 하나의 영화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토록
싫어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들 중에서...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남들 다 보는 영화
안보고 남들 안보는 영화만 골라보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 저는 남들이 예약하고 줄서서
보는 ‘미션임파서블 2’를 뒤로 하고 ‘배틀필드’를 선택했습니다.
섹시한 몸매와 춤으로 승부하다가 배가 나오고 몸매가 망가지면서부터 연기에 주력해
연기파배우로의 변신에 성공한 존 트라볼타, 평범하지 않은 출연영화의 선택으로
나름대로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흑인배우 포레스트 휘태커. 이 두사람이 외계인으로
분해 SF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가 되었던 영화.
하지만, 개봉직후 IMDB(Internet Movie Data Base)에서 네티즌들에게 10점 만점에 2.7점
이라는 최악의 점수를 받음으로써 더더욱 화제가 되었던 영화.
뭔가 범상치 않죠?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 그 의문점을 해결해 보기 위해 전 극장문을
들어섰습니다.
외계인에 의해 단 9분만에 점령된 인류. 단지 그들에게 금을 캐 바치는 일밖에 모르게
된 인류. 그중에 홀연히 나타난 한 청년이 인류는 현재의 모습보다 훨씬 훌륭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머지 무리를 이끌어 외계인들을 내쫓고(아니 아예 그들을 멸망시키고 ^^)
지구는 다시 인류의 것이 됩니다.
이게 다냐구요? 이게 다입니다. 할리웃 블록버스터의 미덕은 ‘최대한 단순한 줄거리’와
‘최대한 화려한 볼거리’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이 영화 ‘배틀필드’는 전자에는 정말
충실합니다. 줄거리가 이보다 더 단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줄거리의 비약은
홍콩무협영화의 전사들처럼 날라다닙니다. 한편 후자의 요소에는 정말 불성실합니다.
특수효과는 우리나라 신지식인 1호 심형래 감독의 ‘용가리’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나마 영화속에서 가장, 아니 유일하게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습니다. 외계인들은 혹시
인간이라는 이 미개한 동물들이 기계를 다룰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기계실에 넣고
지켜보는 장면이 있는데, 잘난 주인공을 제외한 인간들은 아는 것이라곤 금을 캐는
것뿐이었기에 갑자기 곡갱이를 들고 기계실 벽을 부시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떠오르는 작품이 하나 있었습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A Wind Named
Amnesia(원제 : 風の名はアムネジア)’란 작품인데 그러고 보니 모든 문명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인류의 이야기라는 점, 인류를 그렇게 만든 장본인들이 외계인이라는 점 등
전체적인 이야기구조뿐 아니라 주인공이 사라진 인류의 문명을 다시 습득하는 장면 등
단편적인 장면들까지 비슷한 점이 많았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일본작품이 인간의 본질까지
고민해 보게 만드는 나름의 철학이 담겨있는 훨씬 진지한 작품이라는 점이지요.
영화를 보고 나왔습니다. 극장문을 들어서기 전에 가졌던 위의 두가지 의문은 모두 해결
되었습니다. 우선 저도 바로 IMDB로 달려가서 이 영화에 대해 평점을 매겼습니다.
☆(별 1/2 = 0.5점)을 주었는데 그건 그 이하의 점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첫번째 의문점은 제 친구 덕에 해결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제작자이기도 한 존 트라볼타는
어느날 외계인이 찾아와 인류를 구원해 줄 것이라는 사이비종교(일명 UFO교)에 심취해
있으며 이 영화는 바로 그 사이비종교의 교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그 소설은 6부작이기 때문에 속편까지 기획되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이 영화는 사이비종교의 광신도가 그 교주에게 바치는 헌시였던 거죠.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고싶다는 생각이 드시는 분은 아직 극장에서 상영중일 때 서둘러
극장으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꼭 극장에서 보셔야 합니다. 왜냐구요? 영화의 유일한
장점이랄 수 있는 음향효과(대단합니다. 귀 찢어집니다.)는 극장, 그것도 음향시설
뛰어난 극장에서만 즐기실 수 있으니까요.
저는 어서 이 지겨운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계절, 여름이 가기만을 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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