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24 :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
프라하로 돌아왔다..
메트로 C선을 타고 한 정거장 이동하면 무제움역..
그곳을 나서면 국립박물관 옆으로 나온다..
국립박물관
체코에서 가장 큰 국립박물관으로 구관과 신관으로 나뉜다. 현재 구관은 리노베이션으로 2011년부터 문을 닫았고, 신관만이 운영되고 있다. 구관은 선사시대, 고고학, 민족학, 문화인류학, 광물학, 동물학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구관은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서 파티가 열리는 대사관으로 나오기도 했다.
신관은 구관을 바라보고 왼쪽에 있는데, 과거 라디오 자유 유럽 방송 건물로 2009년부터 박물관으로 사용됐다. 신관에는 보헤미안 시대의 유물과 의복이 전시되어 있고, 체코가 슬로바키아와 분리 독립된 시기의 체코 현대사를 소개하고 있다. 다른 서유럽의 박물관에 비해 볼거리가 많은 편은 아니어서 체코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출처 : 박정은 <셀프트래블 프라하>
이곳이 신관 건물..
그리고 이곳이 리노베이션 중인 구관..
아름다운 모습을 온전히 볼 수는 없지만..
가림막에도 외벽을 그려놓아서 흉하지는 않네.. (이건 칭찬해 줘야.. ^^)
구관 앞에 서있는 바츨라프 동상 앞으로 쭉~ 펼쳐진 광장이 바로 바츨라프 광장..
아무리 이런 일을 지원한다 해도..
저 회사는 비호감.. ㅋ
바츨라프 광장
1348년 카를 4세가 신시가지를 조성하면서 만든 광장이다. 원래는 말 시장이었다.
바츨라프 광장은 광장이라기 보다는 길이 750m, 폭 60m의 큰 대로다. 국립박물관 앞의 성 바츨라프(907~935)의 동상에서 시작해 경사 길로 구시청사로 들어가는 입구까지 이어진다. 성 바츨라프는 체코를 지키는 수호성인으로 말을 타고 구시가지를 내려다 보고 있다. 1912년에 세워졌다. 광장 주변은 유서 깊은 건물들에 상점, 식당, 서점, 호텔, 호스텔, 클럽 등이 있어 항상 관광객들과 체코 시민들로 북적인다.
1918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의 선포가 이곳에서 이루어졌고, 1948년에는 사회주의 공화국이 선언되고, 1968년 알렉산데르 둡체크가 이끌었던 '프라하의 봄'고 1989년 체코 민주화혁명과 바츨라프 하벨의 '벨벳 혁명'의 현장이기도 하다.
*출처 : 박정은 <셀프 트래블 프라하>
프라하의 봄
1956년 소련 내에서 스탈린 격하운동이 있은 후에도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스탈린주의자 노보트니 정권의 보수정책이 계속되었고 체코슬로바키아 국민들의 민주 ·자유화의 열망이 점차 고조되어 갔으나, 노보트니 정권은 이를 외면한 채 소련만을 추종하였다.
1960년대 이에 반발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지식층이 중심이 되어 민주 ·자유화의 실현을 위한 조직적인 운동을 펴기 시작하였다. 이 물결에 밀려 마침내, 1968년 1월 노보트니 당 제1서기가 물러나고, 개혁파의 둡체크가 당 제1서기를, 체르니크가 수상을, 온건파 스보보다가 대통령직을 각각 맡았다.
이들 개혁파는 1968년 4월 체코슬로바키아공산당 중앙위 총회에서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 즉 민주 ·자유화노선을 제창하는 강령을 채택하였다. 그 내용은 재판의 독립, 견고한 의회제도의 확립, 사전검열제의 폐지, 민주적인 선거법제도의 창설,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보장, 국외여행 및 이주의 자유보장, 경찰정치의 부활저지, 경제계획의 추진,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동등한 권리에서의 연방제로의 이행, 자주독립에 대한 대외정책 추진 등이다. 따라서 사실상 검열제가 폐지되고 많은 정당 ·정치단체가 부활되었으며, 의회는 활발한 논의와 비판의 광장이 되었다.
이러한 자유화를 위한 정책적 변화가 있자 온 국민은 ‘프라하의 봄’이라 하여 공산체제로부터의 탈바꿈을 환영하였다. 그러나 소련은 이러한 체코사태가 동유럽 공산국가들에게 미칠 영향을 우려하여, 이 체제변화를 ‘마르크스 ·레닌주의로부터의 이탈’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불법으로 무력침공을 감행하였다.
1968년 8월 20일 소련군을 비롯한 바르샤바조약기구 5개국군 약 20만 명을 동원하여 침공함으로써, 이 자유화운동을 일시에 저지하고, 개혁파 주도자들을 숙청하였다. 1969년 4월 소련은 둡체크를 강제 해임시키고 후임 서기장에 후사크를 임명하였으며, 개혁파를 추종한 50여만 명의 당원을 제명 또는 숙청하였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프라하의 봄 (두산백과)
벨벳혁명
벨벳혁명(Velvet Revolution)은 1989년 체코(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정권 붕괴를 불러온 시민혁명으로, 피를 흘리지 않은 무혈혁명이었다.
1948년 공산정권이 들어선 체코슬로바키아는 1968년 당 제1서기인 A.두브체크의 주도로 자유화운동인 일명 '프라하의 봄'을 시도하였으나 바르샤바조약기구군의 침입으로 좌절되었다.
1977년에 다시 일어난 체코슬로바키아 국민은 정부의 인권탄압에 항의하고 헬싱키조약 준수를 촉구하는 '77헌장'을 공표하였다. 이어 1989년에는 바츨라프 하벨의 주도 아래 공산통치 종식과 자유화를 요구하는 '벨벳혁명'을 일으켰고 최초의 자유선거로 하벨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를 '벨벳혁명'이라 부르는 까닭은 부드러운 천인 벨벳처럼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적 시위로 정권 교체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벨벳혁명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이곳이 체코 현대사에 있어 중요한 일들이 일어났던 바츨라프 광장이다..
이 분이 체코의 수호성인이라는 성 바츨라프..
성 바츨라프
성 바츨라프는 10세기 보헤미아의 군주로 바츨라프 1세(907~935)가 재위 중 동생에게 살해당한 뒤 성인으로 추대되어 불리는 이름이다. 바츨라프 1세는 보헤미아에 기독교를 받아들여 국교로 지정했다. 국난의 시기가 오면 성 바츨라프가 중부 보헤미아의 블라니크 산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는 기사들을 깨워 적을 무찌른다는 전설이 있다. 블라니크는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중 6곡의 제목이기도 하다. 카를교, 비셰흐라드 등 체코 어느 장소, 어느 도시에서도 그의 동상을 볼 수 있을 만큼 체코를 대표하는, 체코를 지키는 수호성인이다.
*출처 : 박정은 <셀프트래블 프라하>
자리에 앉아 쉬고 있는 사람들..
광장의 분위기를 느끼며..
이곳에서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되새기며..
천천히 걸어본다..
옛 트램 객차를 이용한 카페..
이곳이 나름 바츨라프 광장의 상징적인 장소인 듯..
단체 투어의 집합 장소로 이용되는 거 같더라..
트램이 오가는 길까지 왔다..
중심가답게 이 길로 많은 트램들이 오간다..
잠시 어디로 갈까 고민..
미리 알아온 가든 카페가 이 길에 있고.. 하벨시장도 못 가봤는데..
하지만 트램을 타고 캄파 지구로 가기로 했다..
어제 근처를 지나기는 했지만.. 왠지 그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져서..
****
이하는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들..
보통 카메라 사진들과 겹치면 '더보기'로 감춰놓는데..
이곳에서의 사진들은 보이도록 올려본다..
위의 GM1 사진들은 노출 차이 때문에 멋진 하늘이 다 날아갔기에.. ^^
이날도 하늘과 구름이 열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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