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22 : 프라하.. 구시가 광장으로..

시차 때문에 새벽같이 잠에서 깨었다가 정작 호텔을 나서는 것은 늦어졌다..

새벽같이 관광객없는 카를교를 한번 걸어보려 했는데..

(이건 결국 프라하를 떠날 때까지 실행하지 못했다는.. ㅜㅜ)


호텔에서 조식을 든든하게 챙겨먹고..

9시가 되기 조금 전에 호텔을 나섰다..

어제 저녁의 기억을 되살려 구시가 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D810은 가방에 넣어둔 채..

GM1을 꺼내들었다..




이 나라에는 아직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걸까?

돌아다니면서 한번도 못본 거 같다.. ^^




오스트리아에서는 발음이라도 할 수 있으니 누구한테 길 물어보기라도 했는데..

체코어는 발음 자체를 모르겠어서 힘들었다는.. ㅎ


암튼 난 왼쪽 방향의 관광안내소로 가야 한다..

프라하 카드를 사야하기에..










코카콜라의 빨간색이 아침 햇살에 눈부시다..




미니는 참 이래저래 꾸며놓으면 참 예쁘다는..



저 금딱지는 진짜일까?



드디어 구시가 광장에 도착..



체코와 EU 국기가 보여서 프라하 시청 건물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그냥 관공서라고.. ㅎ




어제 밤에 보았던 틴 성모 교회..



광장 한가운데 얀 후스 동상..


얀 후스


체코의 신학자로 종교개혁을 주장했다. 당시 로마 가톨릭은 세속화되어 문제가 많았는데 얀 후스는 면죄부를 파는 비도덕적인 성직자들을 비판하며 성서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1411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파면당한다. 이후에도 체코인의 지지를 얻으며 설교를 계속하자 콘스탄츠 공의회의 부름을 받는다. 얀 후스는 고위 성직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참석했다 체포되어 1415년 결국 화형당했다. 얀 후스의 죽음은 체코인들의 반발을 샀다. 그는 카를대 총장을 지내며 체코어를 발전시켰고 체코인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체코인들은 그를 순교자로 생각했다. 얀 후스가 화형당한 7월 6일은 국가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얀 후스의 동상은 순교 500주년 기념으로 1915년에 세워진 것이다. 하단에는 체코어로 '서로 사랑하라, 모두에게 진리를 베풀라'라는 글이 쓰여 있다. 그는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에 영향을 주었다.


*출처 : 박정은 <셀프트래블 프라하>



얀 후스 동상 왼쪽으로 성 니콜라스 교회..






광장 파노라마 한번 담아봤는데..

틴 성모 교회 첨탑이 잘렸네.. -.-a

(엇~ 왼쪽 저 남녀 아래에 보이는 것이 자오선 표시인가? ㅎ)






관광안내소로 가는 길에 마주치는 천문학 시계..

10시까지 10분밖에 안남아서 역시나 종치는 세리머니를 보려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천문학 시계


1410년 시계 장인인 미쿨라시(1350~1419)가 만들고, 프라하 대학의 학장으로 수학자이며 천문학자인 얀 신델(1375~1456)이 디자인했다.

15세기 당시 유럽인들은 천동설을 믿어 지구를 중심으로 달과 태양, 행성들이 도는 형태다.


*출처 : 박정은 <셀프트래블 프라하>




위쪽이 세리머니가 벌어지는 천문학 시계이고..

아래쪽은 농경 달력이란다..



매 정시가 되면 저 해골이 고개를 끄덕이며 세리머니가 시작된다..

지금이 '죽음을 맞을 시간'이라는 뜻이라는데..

그러면 주변의 인간들이 '아니다'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고..




그리고 저 두개의 창으로 12사도가 모습을 드러내고..

저 황금닭이 울면 세리머니는 끝.. (1분 정도 소요된다고..)


죽음의 시간이 다가오면 돈도 허영도 쾌락도 모두 소용없다는 의미.. 란다..

그렇게 깊은 뜻이.. ㅎ





저기 i자가 쓰여진 곳이 관광 안내소..


프라하에서 앞으로 3일을 머물 예정이므로 3일권을 1,810코룬(카드 청구서를 보니 94,771원)에 구매..

트램 엄청 타고 여기저기 할인받은 거 생각하면 남는 장사.. 라고 믿어야지.. ㅎ



사실 천문학 시계 위로 솟은 구시청 청사 첨탑에서 내려다 보는 구시가 광장의 모습도 멋진데..

지금 공사중이다.. -.-


구시가 광장


11세기부터 개발되어 광장과 시장으로 프라하 시민의 삶의 중심이 된 장소다. 화이트 마운틴의 전쟁 후에는 반란에 참여한 27명의 사람들이 1621년 6월 21일 광장에서 처형되고 일부 시체는 본보기로 틴 성당의 첨탑에 매달기도 했다.

1945년 5월 7일, 나치의 폭격으로 구시가 광장은 쑥대밭이 된다. 천문학 시계와 예배당이 크게 파괴되었고, 그 뒤편은 완전히 파괴되어 오늘날 공원(여러 먹거리를 파는) 부지가 됐다. 광장 한쪽에는 부패한 카톡릭을 비판하며 종교개혁을 주장하다 화형당한 얀 후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출처 : 박정은 <셀프트래블 프라하>


아침이라 천문학 시계 앞에 모여든 사람들이 조금 적다..




카를교 쪽으로 걸어가면서 여기저기를 담아본다..



어제밤에 많은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추억을 남겼겠지..

그러고 보니 그 분위기 한번도 못즐겼네.. ㅎ







영화처럼 광란의 파티가 벌어지는 곳인가? ㅋ





체코 대표 길거리 음식 뜨르들로..

이거도 결국 마지막 밤에 하나 겨우 먹었다.. ㅎ





프라하에 왠 애플 뮤지엄?

심지어 입장료도 있더라는..




저런 곳에 앉아서 커피라도 한잔 했으면..





카를교가 가까워지니 사람들이 늘어난다..




색깔이 예뻐서 한컷..



골목골목이 예쁘다..









저 탑이 보이는 곳이 카를교의 시작..



관광객들로부터 한발 떨어진 골목..

이곳에도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있겠지..



자 이제 대망의 카를교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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